
1970년대 이전까지는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훨씬 능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 북부가 일본의 병참 기지로 개발되면서 산업 시설들이 집중되었던 반면, 남한은 1960년대까지 미국 원조에 의존하는 농업 국가로 남아있었다. 당시 북한은 중국, 대만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고, 1970년대에 남한에게 역전당한 후에도 어느 정도 국가 운영이 가능했다.
그런데 1980년대가 되면서 북한은 4번이나 걸쳐 되돌릴 수 없는 경제적 오류를 저질렀고, 결국 완전한 경제 붕괴로 빠져든다.

1. 서해갑문 건설 사업
1981년 북한 지도부는 서해 지역의 수자원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확정하고 대규모 갑문 건설을 추진한다. 소련의 기술 전문가들을 불러 설계와 시공을 맡기려 했으나, 현장 검토를 마친 소련 기술진은 '이 규모에서는 시공이 불가능하다'며 참여를 거절한다.
이 소식이 김정일에게 전해지면서 상황은 꼬인다. 김정일은 '기술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소련이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고, 이를 김일성에게 보고했다. 자존심이 상한 김일성은 '우리 기술로 독자 건설하겠다'고 결단을 내린다.
이 사업에 투입된 인력은 20만 명이 넘었고, 총 건설비는 60억 달러에 이르렀다.

2. 순천화학련합기업소 (비날론)
비날론은 1939년 리승기가 발명한 합성섬유로
북한에서는 주체섬유 라는 이름으로 크게 홍보되었다.
이에 김일성은
1983년 순천에 비날론 공장을 설립할 것을 지시하는데
비날론은 이미 나일론과 폴리에스터에 밀려 사장된 기술이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주체섬유 라는 명목 하에 이를 밀어부쳤고
이 공장 설립에만 100억 달러
당시 북한 GDP의 77%를 꼴아박는다.
당연히 이 비날론 공장은 역시나 망했고
지금은 관리도 제대로 되지 못한 채 논밭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3. 북한의 대남 수해지원
1981년 서해갑문,
1983년 순천비날론
등으로 이미 경제를 파탄 내버린 북한은
1984년 공산권 국가 최초로 디폴트 선언을 한다.
하지만 정신을 못차렸는지
1984년 (디폴트 선언한 그 해)
남한에서 서울 대홍수가 터지자
"우리가 도와줄게" 라며 물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연히 체제 경쟁 중인 남한이 이를 받을 리가 없으니
경제 망한 것을 체제 경쟁으로 만회해보려는 정치적 술수였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남한은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 북한의 제안을 수락한다.
남한이 수용해버리자 물릴 수 없던
북한은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수해 지원을 하게 되고
경제는 또 다시 박살난다.
그나마 체제 경쟁에서라도 우위를 점하면
자존심이라도 챙겼겠지만 오히려 남한이
북한이 지원한 물자 이상으로 답례를 보내면서
이마저도 실패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https://www.fmkorea.com/8809063901
4.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꼴받은 김일성은 우리도 질 수 없다며
1989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고 나선다.
이에 1985년부터 북한 GDP의 30%를 축전 개최에 몰빵한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1981년, 1983년, 1984년의 일이다.
서해갑문 건설에 약 60억 달러,
비날론 공장 증설로 약 100억 달러
총합 160억 달러를 이미 박은 뒤에 또 다시 47억 달러를 박아버린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다른 사업들은 유동성 자산이나,
현물 자산들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이 세계 축전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허공에 돈을 날렸기 때문에
더욱 타격이 컸다.
결국 90년대에 이르러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맞이했고
경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렇게 경제를 파탄 내는 와중에도
무리한 국방비 증액, 김씨 일가 우상화 작업 등으로
남은 짤짤이 예산마저 모두 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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