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기자 중 한 명이 직접 북한을 빠져나온 고위 관리와 만나서 천안함 사건의 내막을 취재했습니다. 북한 전문가로 알려진 이 기자는 그동안 보도한 북한 관련 기사에서 거의 오류를 내지 않아 신뢰도가 높은 편입니다.
몇 년 전 탈북한 고위 인사로부터 천안함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 취재의 특성상 다중 검증이 어렵지만, 그 인사의 설명이 매우 상세하고 논리적이어서 기사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이 대통령의 강경책과 식량 지원 거부에 대한 보복이 동기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차기 지도자 김정은이 군부에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정찰총국에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게 핵심입니다.
천안함이 공격 대상으로 선택된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한국 해군 함정 중에서 규모가 상당했고, 무엇보다 오래된 소나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북한의 소형 잠수정을 탐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점이 주요 이유였습니다.
정찰총국 산하의 남포 기지 담당 부서가 작전을 주도했으며, 6명 탈승이 가능한 소형 잠수함을 투입했다고 전해집니다.

5-6년 전에 북한을 탈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나서 천안함 폭침 관련 디테일을 취재함.
북한 취재의 특성상 더블체크하기 어려웠으나,, 고위급 탈북자가 설명한 천안함 관련 정황이나 디테일이 너무 구체적이고 합당해서 이를 컨텐츠로 만들었음.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동기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식량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강경책을 유지하자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기획되었음
거기에 더해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은이 군사적 결단력과 배짱이 있는 인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정찰총국에 직접 지시를 내림
왜 하필 천안함이었나?
천안함은 북한 경계선에 근접하는 한국 군함 중 규모가 컸고 특히 1980년대식 구형 소나(음파탐지기)를 장착하고 있어 북한의 소형 잠수정을 탐지하기 어려웠음
어떻게 공격이 이루어졌나?
작전은 정찰총국 산하 '남포 연락소'가 주도했으며, 6인승 소형 잠수정 3척이 유기적으로 움직임
루트 개척보조인 1조는 침투 경로의 유빙이나 장애물을 확인하며 앞장서는 역할을 맡았음.
작전 중 기체 고장이 발생했으나, 천안함이 사정권에 들어왔다는 레이더 확인 후 작전은 중단 없이 강행되었다고함
직접 공격조인 2조는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했음. 533mm 어뢰 두 발을 탑재할 수 있는 소형 잠수정으로, 한국군의 탐지망을 피해 은밀히 접근해서 천안함에 어뢰 발사
엄호 및 재공격조인 3조는 한국군의 반격 시 2조를 방어하고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음. 만약 2조의 공격이 실패했을 경우 직접 재공격에 나설 준비도 갖추고 있었으나 별다른 반격없이 셋다 북한으로 복귀
특히 북한은 어뢰 추진체나 파편이 발견될 것을 철저히 대비했음
어뢰 껍데기에 페인트를 세 번이나 덧칠했는데 이는 훗날 증거가 발견되었을 때, "한국 측이 우리 어뢰로 둔갑시키기 위해 억지로 페인트칠을 조작했다"라고 주장하기 위한 치밀한 알리바이용
공격 이후 있었던 일들
천안함 함수가 인양되던 시기(4월 말),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를 대동하고 남포 연락소를 방문해 공격조를 직접 만났음
대원들에게 김정은의 친필 이름이 새겨진 '명함 금시계'를 수여했음.
또한 공격에 직접 가담한 2조 대원 6명 전원에게 평양 시내 3칸짜리 고급 주택을 지급하고 본인의 희망에 따라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고급당학교 등으로 진학하여 현재는 북한 노동당과 군의 핵심 간부로 활동 중
+다만 루트개척조인 1조와 엄호조인 3조에겐 별다른 포상이 없어서 불만의 소리가 조금 있었다고 함
출처: 에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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