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아프리카의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15세기 ~ 1975)였다. 이 섬은 원래 무인도였고, 이 나라의 국민은 아프리카 본토 노예 출신의 흑인과 포르투갈 출신의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 혼혈이 대다수이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외형은 "흑인"에 가깝고 국가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하지만 여전히 많은 카보베르데인은 자신들이 흑인, 혹은 아프리카 국가가 아니라고 느낀다.
역사적 배경
카보베르데의 정체성 혼란은 포르투갈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에 있다.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 인구는 "문명인"(유럽인과 조건을 충족한 소수의 흑인들)과 "원주민"으로 구분하여 "원주민"을 차별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과 더 많은 혼혈 및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1947년 모든 카보베르데인이 원주민이 아닌 포르투갈 시민으로 인정되었다.
"아버지는 포르투갈 시대에 모잠비크에서 카보베르데인 식민지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나 큰 집에서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는 특권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 덕분에 카보베르데인은 식민지 행정을 통합하기 위해 "식민지 중간 관리자"로서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로 파견되었다. 즉 카보베르데인은 식민지 주민이면서도 다른 식민지인들을 아래로 두었고 이런 카보베르데인의 "특수한 지위"는 그들이 "포르투갈인"에 통합된 존재이며 따라서 인종우월주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면 상투메 프린시페 농장에서는 반대 역할을 맡았다. 거기서 카보베르데인은 포르투갈인 아래서 거의 독립할 때까지 강제노동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카보베르데 역사에서 다소 침묵하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포르투갈 시대에 나고 자란 이들은 스스로를 "포르투갈인"으로 식별하며 아프리카인, 흑인과 다르다는 특별한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러나 독립 후 정부는 카보베르데가 "아프리카 국가"임을 자처하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카보베르데인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독립 투쟁을 하며 우리가 아프리카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흥미진진한 시간이었습니다." - 둘체 알마다 두아르테
이에 어떤 카보베르데인은 포르투갈과의 관계를 잊고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재인식하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아프리카인과 구분되는 "카보베르데인"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스스로를 "문화적 백인" 심지어 그냥 "백인", "포르투갈인"으로 식별하기도 한다.
오늘날 카보베르데는 국내보다 해외에 사는 인구가 더 많은데, 이러한 정체성 논란은 해외에 있는 인구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식민지 시대에 미국으로 이민 간 카보베르데인은 흑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 더욱 아프리카인 정체성을 거부하고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포르투갈계"로 자신들을 식별했다.

1. 아프리카인을 차별하는 아프리카 국가
몇몇 카보베르데인은 카보베르데가 인종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고 말하지만, 카보베르데 성평등 및 펑등 연구소의 조교로 일하는 에반드라 모레이라는 카보베르데인은 유럽인과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을 다르게 대한다고 말한다. 여러 사례를 보면, 카보베르데인은 의식적으로는 자신들이 아프리카에 속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무의식적으로는 아프리카임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여자는 흑인인데 예쁘다." -> 카보베르데인이 아프리카 흑인 여성의 외모를 칭찬할 때 이런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아프리카 이민자의 성기는 여성에게 해를 끼치고 자궁을 찢어버릴 정도로 크고, 질병을 퍼뜨릴 만큼 성행위를 많이 한다." - 미구엘 마데이라에 의하면 카보베르데인들은 아프리카 이민자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아버지는 포르투갈 시대에 백인의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니거'라고 놀림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흑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매우 충격받았지만, 그 뒤에 아버지도 피부가 어두운 흑인들을 '니거'라고 불렀습니다."
인류학자 미구엘 마데이라는 아프리카인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를 통해 카보베르데인은 단절된 유럽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고 분석했으며, 이것은 "인종 차별로 구축된 식민 체제"의 유산이라고 결론내렸다.
2. 아프리카에 대한 무관심
오늘날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연합"에 가입하고 정부는 카보베르데가 아프리카 국가라고 인정하고 있지만,
카보베르데인은 서구적인 문화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유럽, 미국,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과의 관계와 포용에 관심을 가지지만, 아프리카적인 것은 평가절하하고, 아프리카 사람들과의 관계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탈식민주의 운동가인 호르헤 안드레드는 카보베르데의 서점에는 "아프리카 지도"가 없으며 카보베르데의 여행사는 유럽 여행 상품만 존재하고 "아프리카 여행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카보베르데의 역사 교육은 그들의 기원이 되는 "아프리카 역사"가 아닌 "유럽 역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편이 자식들에게 지은 이름인 "쿤타"와 "야니"에 대해,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너무 아프리카적"이라며 분노했습니다." - 또한 카보베르데인은 여전히 포르투갈식 이름을 선호하고, 아프리카식 이름을 비선호한다.
독립 후 카보베르데인은 의식적으로는 자신들이 유럽이라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아프리카"를 거부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다양한 외모의 카보베르데인)
3. 인종 문제에 대한 끝없는 토론
"인종 문제는 카보베르데와 내 가족의 삶에서 항상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끊임 없이 논쟁을 펼쳤습니다. 제 아버지는 그의 피부색을 밝게 하여 인종을 개선하기 위해 어머니와 결혼했고, 제가 흑인과 결혼해서 아버지의 인종 개선 계획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내내 저는 항상 인종적 긴장이 얽힌, 때로는 정체성과 정치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대화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항상 묻지 않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흑인인가, 백인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가?""
"인구 85,000명의 프라이아의 한 레스토랑에서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펼쳐졌습니다. 한 여성이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인가요? 아니면 카보베르데인가요? 라고 질문한 겁니다. 한 남자는 우리는 아프리카고,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인입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다른 남자는 눈에 띄게 불편해하며 우리는 카보베르데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떻게 누구는 카보베르데가 아프리카라고 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과거 대부분의 카보베르데계 미국인은 이민 서류에 자신들을 신을 '포르투갈인'으로 적었습니다. 1960년대에 이미 나의 친척들에게 "고향"은 카보베르데와 포르투갈 두 곳을 의미했지만, 내 친척들 중 누구도 포르투갈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보베르데가 아프리카 대륙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내 고모는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가 아니고 자신의 친척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즉 내 친척들은 자신들이 아프리카계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어렸을 적 내 이모는 미국 흑인들을 "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우리와 흑인을 구분짓는지 궁금했지만) 그 이유를 물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삼촌은 "포르투갈의 힘"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닌 이유도 묻지 않았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이모, 두 명은 자신이 아프리카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머지 이모 두 명은 자신이 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시대에 카보베르데인이 누린 "특수한 지위" 덕분에 그들은 자신이 "포르투갈인"이고, 따라서 인종우월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독립 후 카보베르데 정부가 아프리카 국가임을 자처하면서 정체성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결론
식민지 시대 카보베르데인은 포르투갈 사회와 권력의 주변인이었지만, 동시에 아프리카 식민지의 중개인이었으며, 카보베르데인들이 "포르투갈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상, 인종우월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아프리카인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아프리카 유산을 거부하고 결코 될 수 없었던 유럽인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은 카보베르데인의 문화적, 심리적 고립을 가중시켰다.
카보베르데인은 모순을 중심으로 민족성이 구축되었다. 이러한 카보베르데의 정체성 혼란은 인종 서열로 구축된 포르투갈 식민 체제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출처
THE CAPE VERDEANS IN RHODE ISLAND
Ser africano em Cabo Verde é um tabu, Joana Gorjão Henriques
Exploring a Racial Riddle in Cape Verde, ERIN TEXEI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