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에 관한 이야기
이번 글에서는 이집트를 통일한 리비아의 후예 셰숑크 1세에 대해 소개해 보려고 해
이집트인들은 변경의 유목민이었던 리비아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경멸하였는데...
제국과 유목민의 관계가 으레 그렇듯...
한편으로 이집트인들은 군사적으로 쓸모가 많았던 리비아인들을 용병으로 '구매'하였고
셰숑크 1세의 선대는 그렇게 이집트로 흘러와 이집트에서 가문을 이룬 것이었지
이 집안이 정착했던 곳이 중앙 이집트의 헤라클레오폴리스인지 혹은 동부 나일 삼각주 부바스티스인지는 학자들에 따라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어쩄거나 그들은 이집트에 정착한 리비아인들이었으며
용병을 하면서 큰 세력을 이루었는데
파라오에 오르기 전부터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메시웨시의 대추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어
셰숑크 1세가 리비아인 혈통에도 불구하고 파라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대로부터 이미 누적된 그의 가문의 막강한 힘과 더불어 통혼 등으로 그들이 이미 '이집트화' 되어있던 덕분이었는데
특히 셰숑크 1세는 파라오의 딸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통하여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었을 것이야
그리고 이 리비아인(그가 개창한 왕조인 22왕조는 '리비아 왕조'로도 칭해짐)의 통치는 제법 볼만한 것이었는데
그 당시 이집트는 사제들의 힘이 강해져
상 이집트는 파라오가 하 이집트는 아몬의 대사제들이 지배하였으나
셰숑크 1세에 의하여 다시 통일(그는 자신의 아들을 아몬의 대사제의 지위에 올렸어)되었으며
대외적으로도 적극적으로 통일 이집트의 힘을 투사하였는데
아람, 네게브, 블레셋, 페니키아(비블로스에서 그의 조각상이 발견되기도 함) 그리고 이스라엘의 성읍들(므깃도에서 이 파라오의 이름이 새겨진 파편이 발견되기도 함)이 그의 군대에 의해 공략되었어
이러한 파라오의 군사 활동은 <성경>을 통하여도 교차검증되는데
셰숑크 1세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시삭'으로 칭해지며
그는 히브리인들이 통일국가를 이뤘던 시절부터 에돔의 망명한 왕자를 후원하여 그가 히브리인들의 대적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거나
솔론몬의 대적이되어 망명한 여로보암을 보호해 주는 등의 '전략적'인 모습을 보이며
결국 히브리 왕국은 그의 뜻대로 '분단'되었고 이 파라오는 분단된 남왕국과 북왕국을 '각개격파' 해버리지...
* 파라오는 아몬 서제들의 딸들과의 여러 차례의 혼인을 통해 국내정치적 입지를 다졌는데, 한편으로는 대외적으로도 '혼인'을 이용한 흔적이 보이는데...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파라오는 망명한 에돔 왕자 하닷에게 자신의 처제를 결혼시켰고... 또 히브리 전승이나 일부 연구자들은 여로보암의 왕비를 이 파라오의 딸로 추정되기도 해...
* 파라오는 카르나크 신전에 자신의 전공을 새겼을 뿐 아니라 중 이집트의 엘 히베에 있는 아콘 신의 소신전 또한 그의 작품이야
* 셰숑크 1세는 기원전 922년 사망하였는데, 그의 재위 기간은 21년이었며, 이 파라오의 무덤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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