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황토색 수의를 입은 60대 남성이 인천지방법원 법정에 들어서 고개를 좀처럼 들지 못했다. 그는 아들을 사제총기로 격발해 살해한 아버지였다.
A 씨(62)는 십수년간 뚜렷한 직업도 없었지만 전처와 아들로부터 받는 돈으로 생활이 궁핍하지 않았다. 2021년부터는 생활비를 전처와 아들 양쪽에서 각각 320만 원씩 합쳐 640만 원을 챙겼다. 2년 가까이 이어지던 '이중 생활비'는 결국 들통났고, 전처는 2023년 11월부터 중복 지급된 기간만큼 생활비 지급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A 씨는 구직에 나서지 않았고, 자신의 누나에게 돈을 빌려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A 씨는 지난 1998년 성범죄 사건을 저질러 이혼한 뒤, 본인의 나태함과 방탕한 생활로 생계가 어려워진 것임에도 모든 원인을 전처와 아들 B 씨(33·사망)에게로 돌렸다.
급기야 A 씨는 "전처와 아들이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망상에 빠져들었다. 그는 전처가 계속해서 경제적 지원을 할 것처럼 자신을 속인 뒤, 60대 노년이 된 이후 경제적 지원을 끊어 아무런 대비도 못 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에 A 씨는 전처가 사랑하는 B 씨와 그 일가를 살해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던 중 A 씨는 유튜브에서 사제총기 제작 영상을 보게 됐다. 그리고 극단적 선택을 위해 20여 년 전 구입해 창고에 둔 산탄 180발이 떠올랐다. 자신보다 건장한 아들을 칼로 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사제총을 범행 도구로 삼았다. 온라인으로 제작 도구를 구입했고, 뇌관을 치는 등 직접 시험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범행을 위해 운전 연습까지 했다. 준비는 치밀했다.
2025년 7월 20일 밤. 자신의 생일 잔치를 열어준다는 아들 집을 찾은 A 씨는 '편의점에 다녀오겠다'며 아들의 집을 빠져나왔다. 그는 인근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렌터카 안에서 30~40분을 고민하다 트렁크에 실어둔 총기를 챙겼다.
이후 현관 앞 복도에서 총열에 실탄을 장전하고 현관문 초인종을 눌렀고, 문을 연 아들에게 곧바로 사제총기를 발사했다. 아들이 벽에 기대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그 자리에서 오른쪽 가슴 부위에 사제총기를 추가로 격발했다.
당시 집에는 며느리와 손주 2명, 외국인 가정교사도 함께 있었다. 총소리를 들은 가정교사는 도망치기 시작했고, A 씨는 가정교사를 쏘기 위해 한 발 더 총기를 격발했다.
가정교사를 쫓아 아파트를 나간 A 씨는 경찰을 피해 국도를 이용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서울 도봉구 그의 아파트에는 시너와 세제, 우유 통에 담긴 인화성 물질이 15개나 놓여 있었다. 점화장치까지 설치해 이튿날 정오 집을 폭파시킬 계획이었다. 집에 남아있던 전처와 아들의 소유물 등을 불태워 없애기 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범행 3시간 뒤인 21일 오전 0시 20분쯤 서울 시내에서 검거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A 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10월 20일 오후 인천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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